[인사이드 스토리]씨없는 포도는 많은데…'씨없는 수박'은 왜 없나
6월 들어 대형마트 수박 출하 시작씨없는 수박은 찾아보기 어려워수확 늦고 작황 영향도 많이 받아
롯데마트 그랑그로서리 구리점 과일 매대/사진=롯데쇼핑
롯데마트 그랑그로서리 구리점 과일 매대/사진=롯데쇼핑
씨 없는 과일
무더운 여름은 유통·식품업계의 성수기입니다. 시원한 음료나 아이스크림은 당연히 최대 성수기이고요. 여름방학이 있어 제과 시장도 분주합니다. 6~8월을 타깃으로 신제품도 우수수 쏟아져 나옵니다. 라면은 비빔면 신제품들이 잇따라 출시되죠. 프랜차이즈 커피 브랜드들도 이 시기에 여름 신제품을 내놓기 바쁩니다. 올해 대세는 '수박 주스'라는 것 같기도 하더군요.
대형마트는 과일 코너가 분주합니다. 6월이면 여름 대표 과일들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늦봄까지 매대를 차지했던 참외가 물러나고 복숭아, 자두, 살구 등 핵과류가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래도 이 시기 과일의 왕은 역시 '수박'입니다. 커다란 수박들이 과일 코너를 꽉 채운 모습을 보면 '아 이제 여름이 시작됐구나' 하는 마음이 절로 듭니다.
메가커피의 수박 음료/사진=메가MGC커피
메가커피의 수박 음료/사진=메가MGC커피
저도 지난 주에 수박 한 통을 사서 며칠 만에 뚝딱 해치웠습니다. 초여름 수박인데도 당도도 높고 과즙도 풍부해서 맛있더군요. 씨도 아직 덜 여물어서 씨 뱉는 귀찮음도 줄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박 하면 떠오르는 품종이 '씨 없는 수박'인데, 왜 대형마트에서는 씨 없는 수박을 찾아보기 어려운 걸까요.
포도는 이제 씨 없는 품종이 대세가 됐죠. 샤인머스캣은 물론이고 사파이어 포도 등 다른 씨 없는 포도도 많습니다. 그런데 씨 없는 과일의 대명사인 '씨 없는 수박'은 왜 대세가 되지 못한 걸까요. 맛이 없어서일까요, 아니면 너무 비싸서일까요. 혹시 재배가 까다로운 걸까요. 대형마트와 이커머스의 과일 전문가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예민한 수박
우선 씨 없는 수박을 자주 찾아보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수확 시기입니다. 일반 수박은 빠르면 4월 초부터 수확을 시작해 5월부터는 시장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반면 씨 없는 수박은 6월 말에서 7월 초가 돼야 수확이 가능합니다. 일반 수박보다 두 달 이상 늦죠. 보통 9월은 수박 시즌이 끝나는 시기로 보는 만큼 씨 없는 수박을 먹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두 달 남짓인 셈입니다.
날씨 탓도 있습니다. 10여 년 전까지 씨 없는 수박은 한여름에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 품종이었습니다. 씨 없는 수박은 장마와 폭염이 본격적으로 찾아오는 6월 말에서 8월에 출하되는 품종인데요. 일반 수박보다 과피(껍질)가 두꺼워 상대적으로 장마·폭염에 강해 이 기간에 집중적으로 판매가 이뤄졌습니다.
지난해 여름 롯데마트가 선보인 씨 없는 흑피 수박/사진=롯데쇼핑
지난해 여름 롯데마트가 선보인 씨 없는 흑피 수박/사진=롯데쇼핑
하지만 최근 들어 일반 수박도 품종 개량이 이뤄지며 장마나 폭염에 강해지면서 씨 없는 수박의 장점 하나가 사라졌습니다. 장점이 사라진 자리엔 단점만 남았습니다. 과피가 두껍다는 건 먹을 수 있는 속살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의미입니다. 소비자가 좋아할 리 없죠.
과피가 두꺼우면 성장 속도도 느립니다. 앞서 씨 없는 수박은 일반 수박보다 출하 시기가 두 달 늦다고 말씀드렸죠. 그만큼 기르는 데 드는 비용도 늘어납니다. 생산자 입장에서도 씨 없는 수박을 반기지 않는 이유입니다. 이 때문에 씨 없는 수박을 재배하는 지역도 매우 제한적입니다.
포도와는 다르다
'대세'가 된 씨 없는 포도와는 뭐가 다른 걸까요. 포도의 경우 2020년을 전후해 샤인머스캣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시장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전까지 포도는 노지 재배가 많았지만 샤인머스캣 이후로 연중 출하가 가능한 하우스 재배로 전환됐죠. 덩굴 작물인 포도는 한 번 수형이 잡히면 안정적인 수확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반면 수박은 포도보다 기후 영향을 크게 받는 작물입니다. 일조량과 수분 관리가 까다롭습니다. 또 매년 새롭게 파종(씨 뿌리기)과 정식(모종을 밭에 옮겨 심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샤인머스캣처럼 수요가 많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았겠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수요가 많은 것도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한 포도농가의 샤인머스캣/사진제공=쿠팡
한 포도농가의 샤인머스캣/사진제공=쿠팡
그래도 씨 없는 수박을 찾는 소비자는 있습니다. 씨 없는 수박이 본격적으로 출하되는 7~8월엔 판매량이 제법 나옵니다. 저처럼 수박의 씨를 싫어하는 소비자도 있고요. 씨 없는 수박이 일반 수박보다 당도가 높다는 점도 한 몫 합니다. 씨 없는 수박은 씨앗을 만드는 데 소모돼야 하는 영양분을 과육의 당도를 높이는 데 쓰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수박의 당도가 떨어지는 장마철에도 씨 없는 수박은 상대적으로 당도가 유지되는 편이라네요.
마지막으로 씨 없는 수박과 관련된 토막 상식을 하나 알려드릴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씨 없는 수박 하면 반사적으로 '우장춘 박사'가 떠오르죠. 사실 우 박사는 씨 없는 수박을 만든 분이 아닙니다. 육종학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씨 없는 수박을 재배해 농민들에게 알린 게 '씨 없는 수박을 만든 건 우장춘'이라는 이야기가 퍼진 거죠. 실제 씨 없는 수박을 만드는 데 성공한 건 우 박사와 친분이 있던 일본의 기하라 히토시 박사입니다.
그렇다고 우 박사가 '가짜 천재'라는 말은 아닙니다. 사실 우 박사는 씨 없는 수박보다 더 중요한 품종들을 무수히 만들어 냈습니다. 온대 식물인 중국 배추와 한대 식물인 양배추를 육종한 '김치용 배추'를 만들었고요. 당도가 높은 '금싸라기' 참외도 우 박사의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냉해를 버틸 수 있는 감귤 품종을 제주도에 도입했습니다. 지금의 '감귤섬' 제주는 우장춘 박사가 이끈 셈입니다.